출근 둘째 주 수요일 - 이메일 폭탄 근데 이제 시차를 곁들인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네, 저는 2주간 버텨온 다래끼에 결국 항복했어요.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서 아침에 일어나 바로 병원에 갈 준비를 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도 제 눈을 보시고는 많이 놀라셨어요. 결국, 간단한 수술을 받고 집에 복귀하니 공식 교육 시작 전 즈음이었어요.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는지라, 이메일함을 들어갔더니 엄청 메일이 많이 와있었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하나씩 읽어보니, 오늘 오후에 예정되어 있었던 교육이 담당자의 시차 때문에 저녁 늦게로 밀렸다는 공지였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자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봐요. 처음에는 오늘부터 이틀간 또 다른 교육이 확정되었다는 안내 메일이었지만, 여러번 취소와 업데이트를 반복하며 혼란스러운 메일이 계속 왔었어요. 시차가 서로 다르다보니 교육에 혼란을 느꼈던 친구들이 담당자에게 문의했고, 얼마 간의 시차가 지난 뒤 담당자의 폭풍 답변이 있었어요. 여러 시차를 통하며 커뮤니케이션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제가 확인했을 때는 담당자가 퇴근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저에게 공지가 이해 가느냐며 또 연락이 왔어요. 헤이 친구, 나는 말 하 는 감 자 라구. 영어로 써진 공지 메일도 다 소화하기 버거운데 나한테 또 뭘 물어보는 거야.
여러 공지글과 이메일, 그리고 안내 메시지를 종합한 결과, 원래는 금일 저녁 11시까지 교육을 들어야 했지만, 시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저를 포함한 사람들에겐 두 가지의 선택권을 줬어요. 프로그램 담당자는 이메일로 갑작스러운 혼란에 대해 사과를 하며 원래대로 오늘 늦은 시간에 교육을 받거나, 혹은 금일 교육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다음번에 다시 실시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일정 조율을 약속하는 방법을 제안했어요. 역시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의 잘못인지 서로 탓하기보다는, 원래 주어진 일정에 차질이 없게 대체 방안을 찾고 침착하게 공지를 하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전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에 후자를 택하고 셀프 스터디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밀린 이메일을 모두 읽던 와중에, 회사에서 주최하는 비대면 운동 대회에 팀 프로젝트 하던 친구들과 함께하기로 했어요. 각자 매일 운동이나 명상했던 시간을 합쳐서, 최고 득점 팀에게 상품을 주는 그런 대회였어요.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을 함께 잡는 대회였었는데, 비대면 활동이라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함께 하자고 하는 랜선 친구가 있어 함께 하기로 했어요. 마침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었기에 시간을 바로 업데이트도 했어요.
그리고, 한국 직원분들께 인사 글을 썼어요. 신입으로 입사하셨던 분들께서는 자체적인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그분들께 처음으로 인사를 하는 메일이었어요. 원래는 입사하면 인사팀에서 신입직원 입사 소식을 메일로 공유한다고 했는데, 저는 어찌 된 일지 누락되어서 셀프로 하게 되었어요. 이런 것까지 혼자 해야 하나 싶었지만, 말하는 감자는 한국인 동료가 너무 그리웠어요. 어떤 분들이 계시는지 모르지만, 뭔가 두근거렸어요. 메일을 보내고, 얼마 뒤 최근에 입사했던 분께 메시지가 왔어요! 아주 반가웠어요. 비록 부서는 관련이 많이 없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를 찾은 사실이 너무나도 설렜답니다. 제가 느꼈던 낯선 환경에서의 감정들을, 신입분들도 같이 느끼고 있었어요. 제가 신입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더니, 다른 두 분이 깜짝 놀라셨어요. 별도의 교육을 받은 게 없었다며, 서로 놀랐었어요. 알고 보니 부서 간 교육 일정 등이 다른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작은 팀에서도 차이가 크다니 얼떨떨했어요. 어쩌면 평생 서로의 존재를 모를 뻔했지만, 네트워킹을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연락이 닿을 수 있었어요. 어서 사무실에서 직접 인사하기를 바라며, 조만간 랜선 티타임을 가지기로 했어요.
그리곤 이번 입사 동료와 랜선 티타임을 가졌어요. 다들 오전부터 교육 일정 변경 때문에 혼란이 가득한 상태였어요. 그 와중에 오늘 교육을 수강하기로 한 친구들은 급하게 발표 영상을 촬영해 업로드를 해야했는데, 다들 어디에 언제까지 어떻게 전송해야 하는지 몰라서 총체적 난국이었어요. 서로 오디오가 겹치고 말이 또 빨라지니, 말하는 감자는 묵언 수행하는 감자가 되었어요. 원래는 서로 마실 음료를 가지고 와서 카메라 앞에서 마셔야했는데, 어떤 일인지 오늘은 모두 카메라를 켜고 대화하기 바빴어요. 티타임이 끝나고 셀프 스터디를 하는데, 내용이 상당히 어려웠어요. 조직에서 업무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었는데 중간마다 시험도 있고 분량도 만만치 않았어요. 금요일까지 모두 들어야 하니, 온 힘을 다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러던 중 한 중국인 친구와 대화를 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양한 엑센트의 영어를 겪으며 서로의 좌절했던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이 상황에 적응하려면 10년 걸리겠다고 말했더니, 차라리 다른 나라 엑센트를 새로운 언어라고 생각하고 배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며 친구가 맞장구쳐줬어요. 서로 다른 언어 간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는데, 저랑 생각하는 게 아주 똑같았어요. '英雄所见略同' 라고 말했는데, 대충 영웅끼리는 의견이 맞다 이런 뜻이라고 알려줬어요. 앗, 나도 영웅이 되는건가 그러면! 새로운 언어는 슬랭부터 시작한다며, 중국어로 다양한 욕설도 배웠어요. 이 친구는 한국어 욕설에 상당히 능했기 때문에, 오늘은 제가 족집게 과외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영어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같이 고민 이야기할 친구가 생기니 덜 외로웠어요.
업무가 끝나갈 때 즈음 택배가 왔어요. 그건 바로 사원증! 임시 출입증을 쭈뼛거리며 발급 받은 게 지난주였는데, 그래도 이번 주에는 정식 출입증을 받았어요. 사원증을 만지는 순간 조금 울컥했어요. 인제야 새로운 곳에서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랄까요? 당장 사무실로 출근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어요! 괜히 목에도 걸어보고, 만져도 보고, 어떤 게 쓰여 있는지 곰곰이 바라보기도 했어요. 그냥 신분증 중 하나일 텐데, 제 눈에는 이게 참 예뻐요.
남은 교육을 듣고, 시험까지 응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어요.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뜻밖의 탄력적인 업무 환경 덕분에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했어요.
신분증을 영어로는 아이디 카드라고 하잖아요? 그랬더니 갑자기 떠오르는 노래가 있네요.
오늘의 추천곡은 보아의 'ID; Peace B' 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slE2pbm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