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일기

외국계 신입이 맨땅에 헤딩한 결과[눈물의 고군분투]

말하는 감Jㅏ 2022. 3. 24. 23:53

입사 이후 가장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어요. 그동안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갑자기 이번 주에 사방팔방에서 일을 주려고 난리였어요. 제가 업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나름 준비한 것을 드디어 실전에 투입되는구나! 라고 좋아했지만, 역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다른 나라의 한 직원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본인이 담당하는 어카운트(보통 고객이라고 이해하면 쉬움)에서 자문 담당할 사람을 찾는다고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누가 봐도 너무 급해 보였어요. 아니 월요일에 클라이언트 미팅인데 목요일까지 사람을 못 구하다니(…) 자문은 아직 해본 적이 없었는데, 뭐라도 하고 싶어서 “시간은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서 해보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인간의 쎄-한 느낌은 빅데이터라고나 할까요? 클라이언트에 대한 설명을 좀 부탁했더니, 그제야 이야기 주제를 알려주었어요.


오, 망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분야였고, 아쉽게도 전 관련 지식이 1도 없었어요. 너무나도 일하고 싶었지만, 괜히 욕심부리다가 클라이언트 앞에서 실수하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어카운트 담당 직원에게 아쉽지만 능력 밖의 업무라며 거절했죠. 그런데 적절한 사람을 구할 수 없었던 담당 직원은 저에게 첫 번째 킥오프 미팅만이라도 나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어요. 첫 미팅은 자문 보다는 클라이언트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부담 느끼지 말라고 했어요. 그때 거절해야 했는데.

미팅 시간이 다가왔고, 미팅에 참여했어요. 미팅이 시작되었고, 문득 자문에 대한 교육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기억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클라이언트 앞에서 떨면 안 되니깐 침착한 척했어요. 어카운트 담당 직원이 저를 언급하며 “저희 쪽 최고 전문가를 섭외했다”라고 소개했어요. 아니, 잠깐만, 이런 역할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잖아? 하지만 전 프로페셔널하게 여유로운 척 이런 자문 역할이 익숙한 척 킥오프 미팅은 식은 죽 먹기라는 느낌으로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했어요. 물론 온몸에 땀샘은 홍수가 나는 듯 콸콸콸이었지만요. 저희 쪽 직원보다 클라이언트 측 직원들이 더 많이 참가했어요. 젠틀한 척 날카로운 미팅 분위기 속에서 저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어요.


아니, 킥오프 미팅이라 부담 없이 들어오면 된다고 해놓고선, 클라이언트가 대뜸 저에게 사전 검토 결과를 공유해달라고 이야기했어요. “너 진짜 이게 뭐야? 장난해 지금?” 라고 화내고 싶었지만, 저는 차분하게 미리 리서치해둔 자료들을 꺼냈어요. 사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가 끄덕끄덕 이며 계속 이야기해 보라고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저의 자문은 한 마디였어요. “본 사안은 생각보다 복잡하므로, 많은 의논과 협의가 필요합니다” 맞아요. 저는 잘 모르겠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비즈니스적으로 풀어서 말했어요. 미팅이 끝나고,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울컥했어요. 아니 미리 경고라도 해주지. 그 와중에 눈치 없이 어카운트 담당자는 “다음 미팅도 잘 부탁해!”라며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아니 이번 미팅만 참여하라면서?

하지만 저는 더 화낼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곧이어 새로운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이번 미팅은 사실 왜 초대받았는지도 몰라요. 제 업무도 아니고, 이 미팅은 정말 제 포지션에서는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거든요.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배운다는 느낌으로 미팅 관련 메일을 검토하는데, 뭔가 또 쎄했어요. 담당자에게 간략한 소개를 요청하니 대뜸 본인은 회의에 늦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고, 저는 차분하게 백업이 누구인지 여쭤봤어요. 백업 분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백업하는 직원분 또한 다른 교육 중이라 참여가 어렵다고 하셨어요.


담당자도 백업도 참여가 어려운데, 그렇게 되면 저희 쪽에서는 저만 남게 되는 기적이 또 발생해요. 급하게 과거 회의록을 요청했어요. 하지만 저는 미팅 30분 전에 자료를 받고 깨달았어요.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판도라의 상자구나. 누가봐도 사안 하나하나가 무겁고 모두가 고통받고 있는 미팅이었어요. 미팅 전까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들께 초면임에도 염치없이 연락을 했어요. 다들 의견은 왜 제가 이 질문을 하느냐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하나라도 알아야 하니깐! 이라며 정보들을 수집했어요.


미팅이 시작되었고, 캐쥬얼한 듯하지만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어요. 또 그리고 저에게 제가 이 프로젝트에서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아니, 이런 이야기는 또 없었잖아요. 하지만 또 차분하게 자본주의 미소와 함께 이야기했어요. 사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일단 뭐라도 내뱉었어요.


미팅이 끝나고 나니 머릿속에는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여전히 제가 왜 그 미팅에 초대받은 이유도, 갑자기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지만, 이 또한 외국계 기업에선 흔하다고 생각하며 넘어가기로 했어요. 제 한계가 어디인지 몰랐었는데, 오늘 맨땅에 헤딩하면서 이런 일들이 잦으면 그게 한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다시는 일 많이 하고 싶다고, 무슨 일이라도 다 하겠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오늘의 추천곡은 더 자두의 '살고 싶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4ObID9zYLE